Page 253 - 중국현당대소설_배도임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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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현당대소설 인문융합 큐레이터





                8월,  단편소설  「봉쇄(封锁)」를  창작했고,  11월에  상하이  『천지(天地)』  잡지  제2기에  발표했다.
                10월,  36,000자의  중편소설  「금쇄기(金锁记)」를  창작했고,  『잡지(杂志)』  월간  제12권  제2기와  제3기에  연재했다.
                [1944년]
                초봄에  장아이링은  소설  「봉쇄」를  발표한  것으로  인해서  후란청(胡兰成,  1906-1981)과  알게  됐고,  사랑하게  됐으며  그
              와  결혼했다.  이  결혼은  두  해만  유지됐다.
                5월,  푸레이(傅雷,  1908-1966)가  ‘쉰위(迅雨)’라는  필명으로  『만상(万象)』  월간  제3권  제11기에  「장아이링의  소설을  논
              함(论张爱玲的小说)」이란  글을  발표하고,  그  가운데서  「금쇄기」가  “가장  원만하고  긍정적인  해답이고……지금까지  장  여사
              의  가장  원만한  작품으로  「광인일기」  속의  어떤  이야기의  맛이  제법  담겼다.  적어도  우리  문단의  가장  아름다운  수확의  하나
              에  들  수  있다”  하고  말했다.(它是一个最圆满肯定的答复……是张女士截至目前为止的最完满之作,颇有《狂人日记》中某些故事                    Wordpress
              的风味。至少也该列为我们文坛最美的收获之一。)
                「꽃이  지다(花凋)」,  「홍예희(鸿鸾禧)」,  「붉은  장미와  하얀  장미(红玫瑰与白玫瑰)」  등  작품을  창작하고,  그녀의  일생  중    LMS
              가장  중요한  소설집  『전기(传奇)』와  산문집  『루머(流言)』를  출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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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0월에  후란청과  공동으로  문학  월간지  『고죽(苦竹)』을  창간했다.  편집부는  후란청의  난징  집에  두었는데  실제  편집은       육

              장아이링과  후란청의  조카  후사오중(胡绍钟)이  맡았다.  모두  4기를  발간했는데,  정간  시기와  이유는  상세하지  않은데,  제4기      플
              출간  전후해서  천궁보(陈公博,  1892-1946,  中国的第二号大汉奸。1946年6月3日,陈公博被执行枪决。)가  발간  금지  명령을           랫
                                                                                                     폼
              내렸다고  했다.  장아이링은  여기에  「나의  글(自己的文章)」을  발표하여  푸레이의  비평을  얻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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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46년]
                영화  극본  처녀작  〈영원한  사랑(不了情)〉을  썼다.  장아이링은  반달  만에  이  극본을  완성했다고  한다.  쌍후(桑弧,         Wordpress
              1916-2004)가  메가폰을  잡고  문화영화사(文华影片公司)가  제작하고,  천옌옌(陈燕燕,  1916-1999),  류충(刘琼,
              1912-2002),  루산(路珊,  1918-2005)  등이  출연한  멜로영화이다.                                      LMS






                                                                                                     Education






                                                                 영원한  사랑  포스터  마누라  만세  포스터          Platform
                                           루머  출판
                                          광고(대초보,
                               고죽  제1기                루머(베이징
                     후란청      (1944년  10월)  1945년  8월   시월문예출판사)
                                         6일(월)  제2판)

                [1947년]
                장아이링은  영화  극본  〈마누라  만세(太太万岁)〉를  썼다.  〈마누라  만세〉는  쌍후가  메가폰을  잡고  장톈류(蒋天流,
              1921-2012),  장파(张伐,  1919-2001),  스후이(石挥,  1915-1957),  루산,  상관윈주(上官云珠,  1920-1968)  등이  출연한
              코미디영화로  1947년  12월  1일에  개봉됐다.
                [1950년]
                3월  25일에서  1951년  2월  11일까지  ‘량징(梁京)’이란  필명으로  『역보(亦报)』에  첫  번째  장편소설  『열여덟의  봄(十八
              春)』을  연재했다.
                [1951년]
                『열여덟의  봄』을  역보신문사에서  단행본으로  출판했다.  1967년에  장아이링이  제목을  『반생연(半生缘)』으로  바꾸었다.  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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