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439 - 중국현당대소설_배도임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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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현당대소설 인문융합 큐레이터
부의 본심(이유진
루신화의 작품 옮김, 중앙m&b, Wordpress
2013)
루신화(卢新华, 1954- )는 장쑤(江苏) 루가오(如皋) 사림이다. 미국 국적의 중국계 이름난 작가이다. 1978년 중국 문 LMS
교
단에 혜성처럼 등장했고, 중국작가협회 회원이다. 정저우성공재경대학(郑州成功财经学院) 객좌교수를 역임했다.
육
그는 중학교를 졸업한 뒤에 농촌 생산대대로 가서 농사를 지었으며, 1972년에 입대하여 중국인민해방군 전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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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8년, 스물네 살의 상하이 푸단대학(复旦大学) 중문과 1학년 학생으로 단편소설 「상흔(伤痕)」을 발표했고, ‘상흔’은 랫
문화대혁명 시기를 추억하는 문학 사조의 명칭이 됐으며, 제1회 전국우수단편소설상(全国优秀短篇小说奖)을 수상했다. 폼
1982년, 푸단대학 중문과를 졸업했다. 루신화는 공산당원, 제대 군인, 상하이시 중화전국청년연합회(中华全国青年联合会, |
全国青联) 상무위원, 중국작가협회 회원 등 여러 ‘감투’를 썼다. 당시 그의 전망은 매우 밝았고, 사회 각계에서 러브콜이 쇄
도했다. 인민일보사에서는 그에게 단 위원회 서기직을 제안했는데, 이는 지역위원회 서기의 직위와 맞먹는다. 하지만 그는 자 Wordpress
신이 정치인이 되기에는 부적당하고, 자유로운 문학 활동을 하는 것이 자신의 적성에 맞는다고 여겼다고 하며(“拒绝从政,在
我内心里还有一个更重要的原因,那就是我冥冥之中总感到,自己的生命可能更属于文学,更适合做一个自由自在的文化人。”) 그래 LMS
서 마지막에 『문회보』사 기자를 했다.
루신화는 「상흔」에 뒤이어서 중‧단편소설 열몇 편을 발표했다. 「상흔」의 자매편 중편소설 「마(魔)」(1978), 첫 번째 장편
소설 『숲의 꿈(森林之梦)』 등을 출판했다. 「마」는 인민을 박해한 ‘사인방’을 규탄한 소설이며, 생산대대 대장 마쥔치(马俊奇) Education
의 눈에 어떻게 마가 끼게 됐는지, 그리고 그 자신이 어떻게 진정 ‘마’의 희생양이 됐는지를 썼다. 이런 작품들은 모두 「상
흔」의 빛에 가려져서 무슨 특별한 반향을 일으키지 못했다.
1980년대 중반에 루신화는 『문회보』사 기자직을 사퇴하고 남하하여 선전(深圳)으로 가서 사업을 했다. 뒤에 많은 매체에 Platform
서 ‘중국 문인 가운데 사업에 뛰어든 첫 번째 사람(中国文人下海第一)’이란 꼬리표를 달게 됐다. 그는 벗과 함께 ‘신야저우실
업유한회사(新亚洲实业有限公司)’를 세웠는데, 회사 내부에서 인사문제로 갈등이 일자 그는 손을 뗐다.
1986년, 루신화는 미국으로 유학을 떠났다. 생활비와 학비를 벌기 위해 캘리포니아대학교 로스앤젤레스캠퍼스 근처에서
주말과 저녁에 삼륜 인력거꾼을 했다.
1988년, 루신화는 문학석사 학위를 취득했고, 로스앤젤레스의 어떤 도서회사에서 영문 파트 매니
저를 하다가 뒤에 개인 회사를 차리기도 했다. 아내와 아이도 미국으로 건너갔다.
1992년, 로스앤젤레스의 대형 도박장에서 카지노딜러를 했고, 일하면서 인생을 관찰하게 됐다.
1998년, 중편소설 「세부(细节)」를 『중산(钟山)』 제6기에 발표하며 중국 문단으로 돌아왔다.
2004년 8월, 장편소설 『자금녀(紫禁女)』를 창장문예출판사(长江文艺出版社)에서 출판했고, 독자
와 연구자들의 긍정적인 평가를 얻었으며, ‘중국 읽기, 당대문학 정품 (디지털) 문고(阅读中国——当
중산 제6기(1998) 代文学精品(数字)文库)’에 들었다.
02) 창작배경
상흔문학의 첫 번째 외침이 류신우의 단편소설 「담임선생님」이라면, 두 번째 우레는 루신화의 「상흔」이었고, 중국 현‧당대
문학사에서의 위상은 쉽게 지워지지 않을 것이다.
1978년 8월 11일, 『문회보』는 이례적으로 전면에 스물네 살의 푸단대학 중문과 신입생 루신화의 단편소설 「상흔」을 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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