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461 - 중국현당대소설_배도임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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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현당대소설 인문융합 큐레이터






                  月兰
                웨란

                창순(长顺)네의  재난은  닭  네  마리가  일으킨  것이다.
                이  사건은  1974년에  발생했다.  그해에  나는  농촌공작대에  참가했고,  우(吴)씨  마을의  생산대대를  시찰하고  있었다.  나는
              중등전문학교를  갓  졸업하고  생산대대에  참가한  지  얼마  되지  않은  그야말로  햇병아리인  도시  아이였다.  나는  기관  안에서
              경험이  적고  나이가  어린  사람에  속했지만,  그러나  위에서  느닷없이  나를  생산대대를  지휘하라고  보냈고,  그래서  그곳의
              많은  사원이  별안간  나  같은  관리에  대해  ‘네!  네!’  대답만  하게  되었다.                                  Wordpress
                어느  생산대대에,  모두  우씨인  열여덟  가구가  띄엄띄엄  황토  산기슭의  작은  마을  안에  흩어져  살고  있었다.  생산대대는
              그전  해에  재해를  입어  생산량  감소  혜택을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몹시  가난했고  자금  장부에  겨우  잔액  3마오(毛)
              8펀(分)만  남아있었다.  입춘  무렵에는  그야말로  생산대대  건물  안도  텅텅  비어  겨우  낡은  비닐봉지  두  개만  있었고,        LMS
              화학비료  한  냥도  사들일  수  없게  되었다.  양돈장  안에는  비쩍  마른  승냥이  같은  늙은  암퇘지  두  마리가  신음하고  있고,  그   교
                                                                                                     육
              나머지  돼지우리는  전부  텅  비었다.  똥통  안의  돼지  똥도  얼마  없었다.  이러한  지경에서  어떻게  다자이(大寨)를  배우고
                                                                                                     플
              어떻게  샤오진좡(小斳庄)을  배우랴?  나는  너무  초조했다.                                                   랫
                농촌업무에  대해  잘  아는  동료가  가리키는  말을  들었다.  생산대대에  들어가면  비료를  잡아야  하고  비료가  있으면           폼

              주도권이  생긴다.  나는  즉시  마을  사람  남녀노소를  소집하여  공작대의  배치에  따라  우선  부농분자를  비판  투쟁한  뒤에         |
              이어서  공작대에  일련의  명령을  선포했다.  개인적으로  돼지를  기르고  닭을  기르는  숫자를  제한했다.  즉시  초과  대출금을
              상환할  것을  재촉했다.  개인의  직조기와  물레를  봉쇄했다.  두  달  안에  집안의  똥을  자류지(개인이  경영하도록  남겨둔  땅)에     Wordpress
              퇴비로  주는  것을  금지했다.  돼지와  닭이나  오리를  밭에  놓아  기르는  것을  금지했다.  녹색비료로  풀씨의  성장을
              보호한다…….  처음  몇  가지는  뭐  신선하다고는  할  수  없었겠지만,  사원들은  불만이  있어도  찍소리도  못했고,  뒷부분의  두      LMS
              가지  항목에  대해  시끄러운  볼멘소리가  튀어나왔다.  특히  일군의  바로  신발창을  만들고  아이를  안은  아낙네들이  다짜고짜
              내게  되는  대로  말했다.  “자류지가  황폐하면  당신이  우리에게  끼니마다  소금국을  주려는  거요?”  “돼지를  밭에  내놓지  않는
              거야  옛날  말이지,  닭과  오리를  밭에  내놓지  않으면  모두  굶겨  죽이란  말이에요!”  “지금은  사람도  먹지  못하는데,  닭과     Education
              오리를  닭장  안에  가두어두면  사람  목숨으로  그것을  먹이라는  말이요?”  “건너편  산의  현(县)은  이런  법을  시행하지  않아도
              너무  확  달라졌어요!”…….  하긴  그들이  하는  말들이  사투리여서  대부분은  나는  알아듣지  못했고,  그렇지만  말다툼  소리,
              애원하는  소리와  항의  소리가  마치  나를  침몰시키려는  것  같았다.  그러나  나는  양보하지  않았다.  현지  말로  말하면,  ‘한     Platform
              마디를  잡고  일  분도  양보하지  않는다’  하는  식으로.  그들은  구시렁거리다가  결국은  입을  다물었다.
                회의를  마친  뒤  며칠  동안에  일은  그럭저럭  순조롭게  모든  것이  명령에  따라  진행되었다.  들판은  온통  고요했고  마을마다
              거리마다  모두  표어로  도배를  했고  과연  기상이  확  달라졌다.  그러나  언젠가  내가  대대에서  돌아왔을  때,  갑자기  밭이랑
              사이를  헤집고  돌아다니는  닭들을  보았다.  누런  놈,  검은  놈,  흰  놈이  푸른  풀씨  밭에서  산책하며  모이를  쪼아  먹고  있었다.
              강력한  닭의  발톱이  수시로  풀씨를  헤집어  뽑아버렸고,  날카로운  부리로  톡――톡――하는  모양이  거칠고도  한가로웠다.
                “뉘  집  닭이  밭에  나온  거요?”
                대답하는  사람이  없었다.
                내가  다시  소리를  질렀지만,  여전히  대답하는  사람이  없었다.
                “더  나오지  않으면,  내가  닭을  잡아가겠소!”
                생산대대의  양돈장  쪽  큰  단풍나무  아래의  흙벽돌집  안에서  부들부들  떠는  말소리가  흘러나왔다.  “아이고,  네,  네,  우리
              집이에요!”  한  아낙네가  그  집  안쪽에서  튀어나왔고,  대략  서른  살  남짓한데,  몸이  삐쩍  마르고  피부가  거무튀튀하고  머리를
              길게  땋았고  얼굴이  그다지  예쁘지  않았다.  나를  쳐다볼  때,  눈  속에  놀란  기색에  섞인  당황함과  비겁함이  드러났고,  얼어서
              불그레한  두  손을  검은  앞치마에  다급히  문질렀다.  그녀는  고개를  끄덕이며  웃는  얼굴로  말했다.  “아휴,  간부  동지,  정말,
              죄송해요!  제가  방금  돼지  먹일  채소를  씻느라고  우리  집  하이야쯔(海伢子)에게  꼬꼬댁  닭이  밭에  뛰어나가지  못하도록
              보라고  했더니,  애가  잠깐  어디로  갔는지  아세요?”  말을  하면서  그녀는  허둥지둥  밭이랑으로  달려  내려갔고,  “허이!  허이!”
              외치며,  흙덩어리를  네  마리  누런  암탉한테  던지며  집안으로  몰고  가면서,  또  무슨  하이야쯔를  욕하였다.  “우라질  놈,  마음이
              콩밭에  가서  있어  그저  노는  거만  알지!  너  아빠가  돌아와만  봐라,  아빠가  한바탕  두들겨  패지  않으면  이상하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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