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480 - 중국현당대소설_배도임교수
P. 480
11장 심근과 전통 Search-For-Roots and Tradition
그의 큰누나가 미처 문을 넘어 들어가기도 전에 얼굴이 붉어졌고, 한마디 내뱉고는 문 안으로 들어와 버렸다. 그의
어머니는 도리어 즐거워져서 이 계집애가 사람을 즐겁게 한다고 여기고 큰 솥에서 죽을 한 바가지 퍼내 계집애에게 먹
게 했지만, 그 아이는 먹지 않고 큰 질그릇 안에 쏟으면서 제 어머니에게 드시라고 갖다 드려야 한다고 말했다.
“네 엄마는 어디 계시니?” 그의 어머니가 물었다.
“마을 동쪽 끝의 큰 버드나무 아래 계세요, 병에 걸렸어요.” 계집아이가 말하면서 떠났다.
그의 어머니는 밥 한 끼를 제대로 먹지 못했고, 가슴이 두근거렸고, 한 가지 일을 내팽개친 것 같았다. 밥을 먹고
그녀는 솥을 내려놓고, 죽을 한 그릇 가득 담고 부침 두 장을 들고 동쪽 끝으로 갔다.
마을 동쪽 끝의 큰 버드나무는 작은 바오씨 마을에서 가장 높은 곳이고, 그해 여름에, 아흐레 동안 밤낮으로 비가 중
국
내려서 온 마을이 전부 물속에 잠겼을 때, 오직 큰 버드나무 가지만 드러났고, 수풀 한 더미처럼 쥐 몇십 마리만 살아
현
남았다. 당
버드나무 아래 과연 병으로 쓰러진 안색이 누런 여인이 한 사람 기대어 있었다. 계집애는 그녀의 옆에 바짝 붙어서 대
소
직접 제 머리를 땋고 있었다. 강마른 원숭이 같은 몰골에 도리어 거무칙칙한 커다랗게 땋은 머리 두 갈래가 있었다.
설
바오옌산의 안사람이 이 모녀 두 사람 옆쪽에 쭈그리고 앉아 계집애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말했다. |
“예전에 나도 이렇게 아름다운 머리카락이 있었지. 그때는 한 갈래로 땋았었어, 이 만큼 붉은 댕기를 묶을 정도로
길었지.” 그녀는 손가락으로 길이를 재는 시늉을 했다. Chinese
한참 뒤에, 누군가 바오옌산 안사람이 외지 사람 같은 모녀 두 사람을 데리고 집으로 가는 것을 보았다. 이틀이 지
나 그 여인은 얼굴에 좀 윤기가 흐르자 가버렸다. 어린 계집애는 남았다. 날마다 라오자의 그 열두 살 먹은 작은 형 Modern
원화쯔(文化子)를 따라 밭에 나가 들나물을 캐고 집에 돌아오자마자 라오자를 안고 문 앞에서 놀았다. 작은 노래를 부
르고 목청이 아주 날카롭고 또 낭랑했고, 남들은 즐겁게 들었고, 언제나 그런 놈팡이 같은 녀석들을 문 앞에 멈추어 and
서서 떠나지 못하게 했다.
“샤오추이쯔(小翠子)야, ‘12월’(十二月, 노래의 곡명)을 불러!”
바오옌산 안사람이 문 안에서 달려 나와 먼저 놈팡이 녀석들을 욕하며 쫓아버렸고, 그런 다음에 샤오추이쯔를 욕했 Contermporary
다.
“부르지 마라, 얼굴도 가죽도 없니, 뭘 불러!” 급히 말하면서 그녀의 몸뚱이를 두어 번 쥐어박았다. 점점 샤오추이
쯔는 부르지 않게 되었고, 목청도 잠긴 것처럼 벙어리가 되었고 말하는 소리까지도 버걱거리게 되었다. 그녀가 부르지
않아도 라오자는 언제나 그녀에게 곰살궂게 웃었고, 그녀도 할 수 없이 웃도록 만들었다. Novels
사람마다 라오자를 좋아했고, 오직 바오 다섯째 할아버지만 그 애를 보면 화가 났다. 라오자가 태어났을 때, 바로
자신의 서우이쯔가 숨을 거두었기 때문이었다. 그리하여 그는 자신의 서후이쯔가 라오자의 몸을 빌려 환생한 것이라
단정했다. 지금 그가 생산대대에서 다섯 가지 보장(五保)를 받게 되자 속으로는 도리어 이 ‘五保’라는 두 글자를 듣는
것이 불쾌했다. ‘五保戶’는 사람들의 마음속에서 ‘자손이 없다’ 하는 대명사가 된 셈이기 때문이다. 바오 다섯째 할아버
지는 성질이 까칠하고 자신이 남들의 거추장스러운 짐이 되는 것을 볼 수 없었고, 언제나 생산대대에서 앞다투어 일했
다. 대대에서 그에게 부실한 풀이나 새끼 나부랭이를 주고 그에게 새끼를 꼬게 했다. 그리하여 그는 날마다 방앗간 담
벼락 아래 앉아서 햇볕을 쬐며 새끼를 꼬았다.
방앗간 안에는 사람이 끊이지 않는다. 나귀 새끼 발굽이 땅바닥을 탁탁 두드렸다. 돌 맷돌이 드르륵드르륵 석반을
눌렀다. 맷돌을 가는 아낙네들이 목청을 높여 나귀를 호령했다. 밀가루가 사락사락 채 위에서 꿈을 채질했다. 그는 언
제나 마음속이 따뜻해진다고 느끼며 들었고, 그다지 외롭지 않게 되었다.
11
장
샤오추이쯔가 라오자를 업고 한 손에 광주리를 들고 한 손에는 새끼 나귀를 부리며 밀가루를 빻았다.
심
근 새끼 나귀는 덮개를 쓰고 눈가리개를 쓰고, 라오자는 바닥에 내려놓으면, 땡볕 아래 앉아 돌멩이를 들고 놀게 되고
과 바오 다섯째 할아버지 발 옆에 있었다. 바오 다섯째 할아버지는 곁눈질로 그를 보면서 살그머니 욕을 했다. “귀신!”
‘귀신’이 듣고 손을 내밀어 다섯째 할아버지의 커다란 털신을 두드리며 웃었다.
전
통 다섯째 할아버지는 속으로 단번에 끙하면서 그 웃는 모양이 정말 자신의 서후이쯔 같다고 느끼고는 코가 시큰거려
외쳤다.
“네 이놈 귀신아!”
새끼 나귀가 드르륵드르륵 맷돌을 에워싸고 뱅글뱅글 돌았고, 샤오추이쯔가 가만히 외쳤다. “워이, 워이.”
477